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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유리 코지레프 |
세 시간도 안되는 거리에 전선이 있지만 많은 |
사진 : 유리 코지레프 |
한 소녀가 딸(왼쪽), 어머니(가운데), 시누이가 얼굴을 가린 채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쿠르드 계열의 소수 민족인 야지디 여성들이다. 딸과 시누이는 쿠르디스탄에 있는 난민 수용소로 탈출하기 전 IS 병사들과 강제로 결혼해야 했다고 말한다. 딸은 2층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려 탈출했다.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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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쿠크의 남쪽에서 페시메르가라고 불리는 쿠르드 민병대원들이 최전방 근처에서 배구를 하고 있다. 2014년 전직 이라크 군 장교들도 포함돼 있다는 IS 병사들이 이라크 마을들을 점령하기 시작하자 페시메르가가 이들에게 맞설 수 있는 몇 안되는 세력 중 하나인 것으로 드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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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 족 젊은이들이 전통 복장과 서양식 복장을 다양하게 입은 채 술라이마니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이 젊은이들은 전 세대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우리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지만 문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결국 다 소용이 없을지도 몰라요.” 한 학생이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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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드하페르 압둘나리 교장이 자신이 생활하는 아르바트 난민 수용소 텐트 앞에서 수백 명 학생들의 수업을 감독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수많은 이라크의 아랍인 난민들이 쿠르디스탄으로 피난했다. “쿠르드인들이 우리를 보호해줬어요. 우리는 이곳에서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그는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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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울라의 시장 대행이 페시메르가가 IS 세력에 맞서 절박한 전투를 벌인 뒤 황폐화된 도시를 살펴보고 있다. 무장 세력은 몰아냈지만 주민들은 폭탄들이 제거되기 전까지 돌아올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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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디스탄 자치정부의 마수드 바르자니 대통령이 자크호에 있는 사관학교의 여성 사관후보생들을 방문했다. 쿠르디스탄은 여전히 이라크에 속해 있지만 자체 의회와 수백 명의 여성 대원이 포함된 자체 부대인 페시메르가를 가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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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쿠크 남부의 최전방 근처에 있는 검문소에서 한 아랍인 여성이 페시메르가 대원들에게 자신의 가족이 쿠르드 족의 영토로 들어갈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지난 2년간쿠르디스탄은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해 내부에서는 난민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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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야지디 족 가족이 신자르 근처에 있는 텔아제르 마을에서 탈출하려다 IS에게 살해당한 남자 친척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이불 아래 숨었는데 총소리가 들렸어요. 밖에 나왔더니 삼촌, 아버지가 모두 죽어 있었어요.” 한 소년은 말한다. 이 소년의 가족 중 살아남은 성인 남자는 한 명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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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디스탄의 수도 헤울레르에 있으며 밤에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바 52에서 술을 마시며 흥청거리는 사람들이 맥주잔을 들어올린다. 이 도시는 최근 몇 년간 석유 호황을 누리며 많은 외국인들을 끌어들였다. 일부 지역 주민들은 술집과 클럽이 너무 많아졌다고 불평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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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디스탄의 유명한 휴가지인 두칸 호에 놀러온 한 남성이 천천히 오후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라크의 쿠르드 족 대부분은 수니파 이슬람교도인데 이들은 아랍, 페르시아, 터키에 사는 쿠르드 족과는 다른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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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에서 돌아온 페시메르가 대원들이 헤울레르 외곽에서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뒤에 있는 아직 완공되지 않은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을 통해 지금보다 희망찬 시대를 떠올릴 수 있다. “우리는 몇 달 동안 임금을 못 받았어요. 그런데 상관 없어요.우리는 쿠르디스탄을 위해서라면 죽을 각오가 돼 있어요.” 한 병사가 말한다.
이라크 북부의 도시 모술이 이슬람 무장 세력(IS)에 점령당한 날, 보탄 샤르바르제리(24)는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생인 샤르바르제리는 웃으면서 쿠르디스탄의 도시 슬레마니에 있는 자신의 부모님 집을 나와 담배를 산 후 전화를 몇 통 했다. 그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이 여름방학 중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동지들을 모을 수 있었다. 모두가 의욕이 넘치고 아직 전쟁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함께 계획을 세웠다. 의문이 제기돼도 금세 해결됐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정당해 보였다. 모두가 조국, 즉 이라크가 아니라 쿠르디스탄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었다. 이들의 아버지가 한때 목숨을 걸고 사담 후세인의 군대로부터 가족을 보호했듯이 이번에는 이들이 잔인한 적으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었다.
IS가 이라크에 침입해 오기 전, 샤르바르제리는 무료하게 졸업을 기다리는 공대생이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음악과 우드였다. 이는 기타와 유사한 악기로 목이 날씬하고 배는 깊고 둥글다.
샤르바르제리는 공공장소에서 연주하며 음악가 동호회에 가입하고 언젠가 자신의 음악을 음반으로 낼 날을 꿈꿨다. 교사인 샤르바르제리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리 건설같이 더 실용적인 분야에서 일하기를 오랫동안 권했다. 이라크 경제는 무너지고 있었고 그 어떤 것도 희망이 없어 보였다. 여느 젊은이였다면 머리를 숙이고 ‘이것이 알라의 뜻’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샤르바르제리는 철저한 무신론자였고 모든 종류의 광신자를 싫어했다. 2014년 6월까지 그에게 신은 잊고 안 한 숙제만도 못한 존재였다. 언제쯤 평화가 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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