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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인터넷커뮤니티 회원들, 서울시... 무고한 버스기사에 핵 펀치 난타
[ CBS 노컷뉴스 권민철 기자]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문제의 여자 아이(빨강 원)가 240번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이 촬영된 건대역 버스정류장 CCTV (캡처= YTN 갈무리)
2~3일간 용광로 같은 여론재판 위에 올랐던 이른바 '240번 버스 기사'가 반전 끝에 무죄를 선고 받는 분위기다.
여론재판은 기울어진 4각의 링 위에서 벌어지는 권투 같았다. 그 것도 일방이 여러 대상과 싸우는 '일방적' 싸움이었다.
240번 버스 기사는 돌아가며 날아오는 상대의 핵 펀치를 견뎌야했다.
제1의 상대는 언론이었다.
일부 언론이 240번 버스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한 것은 12일 오전부터다.
서울특별시버스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을 바탕으로 사건을 기사화했다.
11일 오후 6시 55분 47초에 올라 온 문제의 게시글 <240번 기사 신고합니다>의 전문은 이렇게 돼 있었다.
"약 20분 전 쯤 퇴근시간이라 사람이 많아 앞뒤로 사람이 꽉차있었고, 건대 역에서 사람들이 차례대로 내리고 있었습니다.
뒷문 쪽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 다 제껴가며 다들 내리고 있었고, 5살도 안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내리고 바로 여성분이 내리려던 찰나 뒷문이 닫혔고, 아기만 내리고 엄마는 못 내렸습니다.
아주머니가 울부짖으며 아기만 내리고 본인이 못 내렸다고 문열어달라고 하는데 무시하고 그냥 건대입구 역으로 가더군요.
앞에 있는 사람들도 기사 아저씨에게 내용을 전하는데 그냥 무시하고 가더군요.
다음 역에서 아주머니가 문 열리고 울며 뛰어 나가는데 큰소리로 욕을 하며 뭐라 뭐라 하더라고요.
만일 아이 잃어버리게 되면 책임을 지실껀지.. 사람이 많이 타고 내리는 분주한 역에서는 좀 사람 내리고 타는 걸 확실히 확인하고 이동하시길 바랍니다.
그 아주머니가 아이땜에 정신이 혼미해서 급하게 나갔지만, 정말 제가 그런 일을 겪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갑니다.
꼭 사건에 상응하는 조치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보고 일부 언론이 악마의 편집을 하기 시작한다.
'5살도 안돼 보이는 아이'라고 표현된 부분은 '4살 아이'로 둔갑시켰다.
또 '아주머니가 울부짖었다', '기사가 큰 소리로 욕을 했다'는 부분은 운전자의 '만행'으로 평가했다.
240번 버스를 ‘고발’한 첫 목격담(맨 아래 붉은색 사각형)이 게시된 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 13일 오후 잠정 폐쇄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하지만 CCTV 에는 버스 기사가 큰 소리로 욕하는 모습은 나와 있지 않았다.
또 아주머니가 울부짖기에는 버스 정류장간 거리가 260m 밖에 안됐고, 발차 후 다음 정거장에 정차하기까지의 시간도 45초로 매우 짧다.
또 '문이 닫혔고, 아기만 내리고 엄마는 못 내렸다'는 부분도 당시 해당 버스가 정류장에서 16초나 머물렀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운전기사의 난폭 운전 혐의도 지워졌다.
결국 목격자의 부정확한 목격담이 일부 언론의 과잉대응으로 재생산되면서 단순 해프닝이 거대 사건화 한 것이다.
하지만 사건 발발 하루가 지나면서 운전기사의 대응에 별다른 문제가 없음이 드러났음에도 문제의 언론들은 그 어떤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부 신문은 14일 "자극적인 먹잇감만 생기면 집단 최면 걸린 듯 달려들어 몽둥이질을 해 대는 것이 사이버 세상의 병리현상"이라며 오히려 남 탓을 하기까지 했다.
이 신문은 전날까지만 해도 <"아이만 내렸어요" 엄마가 소리쳐도 안 서고 달린 버스>라는 기사로 운전기사에 비수를 꽂았었다.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버스 기사의 제 2의 상대는 목격자도 아니면서 목격자를 흉내 낸 '소영웅'들이었다.
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에는 최초 목격자가 글을 올린 지 30여분 만인 11일 오후 7시 24분 05초에 두 번째 글이 올라온다.
<아이 잃어버리면 책임 지실건가요>라는 제목의 두 번째 글의 전문이다.
"아이가 버스에서 밀려 내리고 미쳐 못 따라 내린 애 엄마가 버스에서 울부짖는데 모른 척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아이 잃어버리면 어떻게 책임지실 거에요?"
그로부터 8분 뒤인 오후 7시 32분 09초에 3번째 글이 올라온다.
좀 더 과격한 제목이다. <240번 버스기사. 아동학대자 신고합니다> 역시 글의 전문이다.
"아니 아무리 사람이 많고 바빠도 그렇지 어떻게 길도 못 찾을 애기가 엄마랑 떨어져 혼자 내렸는데 그냥 갈수가 있습니까?
엄마가 울면서 내려달라고 했는데 그냥 무시하고 다른 승객들의 항의도 무시하고 갔다는게 이해가 안됩니다.
이 버스회사는 기본적인 교육도 안하는 건지. 만약 아이가 미아가 된다면 그 가정의 불행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기사가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의심됩니다. 저런 인간도 아닌 사람이 많은 시민이 이용 하는 버스를 몰다니 생각만 해도 무섭네요.
진짜 제대로 조치를 취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어 비슷한 류의 글들이 해당 게시판에만 이 날 밤에 100여건 올라왔다.
해당 버스에 탄 승객은 40명 안팎일 텐데 목격담으로 보이는 글은 100여건이나 되는 셈이다.
이 때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이라는 점, 또 게시판에 평소 2~30건의 민원 글이 올라온다는 버스운송사업조합 측의 설명을 감안한다면,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야기를 접하고 버스 기사에 융단 폭격을 가하러 몰려든 무리로 보인다.
첫 번째 목격담을 올린 주인공은 12일 밤 자신이 여성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삭제했다.
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 게시판은 14일 현재 접속자 폭주로 열리지 않아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첫 목격자는 여성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에 아래의 요지의 글로 이전 글을 대체하며 해당 커뮤니티를 탈퇴했다.
"감정에만 치우쳐서 글을 쓰게 됐다. 제대로 상황 판단을 못하고 기사님을 오해해서 글을 썼다.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다. 기사님을 찾아뵙고 사과드리겠다. 잘못된 부분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목격자 코스프레 하면서 '소시오패스'니, '아동학대'니 극단적 용어로 버스 기사를 난도질한 글은 그대로다.
끝으로 버스 기사가 맞서야했던 제3의 상대는 실망스럽게도 서울시였다.
서울시는 이번 해프닝이 보도된 12일 부랴부랴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CCTV
를 토대로 버스 기사의 대응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여론 재판에 떠밀려 버스 기사가 문제의 승객에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사실상 사과를 종용했다. 이는 버스 기사가 승객에게 사과할 이유도 계획도 없다고 버스 회사가 반박하면서 드러난 부분이다.
버스 기사는 이번 일로 13일 오후에는 경찰의 조사까지 받았다.
경찰도 '하이에나 짓'을 하려 했는지 확인하려고 서울 광진경찰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버스 기사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라고 한다. 회사가 주는 '이달의 친절상'을 4회, '무사고 운전 포상'도 2회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딸이 말 한 대로 "25년 동안 승객과의 마찰, 사고 등 민원은 한 번도 받지 않은" 이 성실한 소시민의 삶이 더욱 숙연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노컷뉴스라도 먼저 버스 기사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다.
노컷뉴스는 13일 아침 버스 기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며 누구보다 먼저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려고 했다.
관련 기사 "240번 버스 논란, 우리가 못 본것은?"
하지만 그 것으로 전날 두 차례 썼던 기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 더욱 팩트 체크에 충실하겠다는 말로 버스 기사에게 용서를 구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79&aid=000301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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