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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정치권은 물론 모든 분야 사회지도층의 성공 신화를 나열할 때, 첫 문장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클리셰다. 지나치게 상투적 표현이라 최근에는 가급적 피해야 할 문구로도 거론되지만, 최근 여권에서 깜짝 등장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재명 경기지사의 '흙수저' 경쟁 탓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결을 받으면서 대권행보에 날개를 단 이 지사는 지난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의원과 친분이) 거의 없다. 살아온 삶의 과정이 너무 달라서 깊이 교류할 기회나 뵐 일이 없었다"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 지사는 또 "그분은 엘리트 대학 출신이고 기자 하시다가 (고(故) 김대중 대통령에) 발탁돼서 정치권에 입문해서 국회의원으로, 도지사로 정말로 잘하신 분”이라고 평가한 뒤 "저는 변방에서 흙수저 출신에 인권운동, 시민운동하다가 (성남) 시장 한 게 다지 않나"라고 했다.
이 지사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마쳤고, 젊은 시절에는 공장일을 하다 프레스기에 왼쪽 손목이 껴 지금까지 뒤틀리는 장애를 남겼다. 뒤늦게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이 지사의 언급에 이 의원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2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그분(이 지사) 말씀은 제가 엘리트 대학을 나왔다, 서울대 나온 것을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서 뭐라 하겠는가"라면서도 "당시엔 다 어렵게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진행자의 반복된 언급에 "저도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자랐다. 대체로 그 시대가 그랬지 않은가, 그것을 가지고 논쟁한다는 건 국민들 눈에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이 의원은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뒤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사법시험을 공부할 처지가 되지 않아 곧바로 신탁은행에 취직했고, 이어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두 사람의 "흙수저", "가난한 농부" 논쟁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인물들이라서다. 특히 궁핍한 환경 속에서도 고된 노력 끝에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정치인의 성공 신화는 서민 지지층과의 심리적 유대감을 좁히는 대선주자의 덕목 중 하나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수 전직 대통령들도 비슷하다. 가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낮에는 풀빵을 팔아가며 동지상고 야간부를 졸업했다"는 이력을 즐겨 읊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어려운 형편 탓에 부산상고 졸업 후 대학에 가지 못했다.
다만 2년 후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불붙은 양측의 대결 구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의원 역시 "자꾸 싸움 붙이려고 그러지 마시고"라며 "그것으로 논쟁한다는 게 국민들 눈에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2019년 9월 18일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함께 경기 포천시 거점세척 소독시설을 찾아 아프리카 돼지열병과 관련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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