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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들지 않고 시선 피해…서로 외면한 40년지기
피고인석에서도 의식적으로 정면·문서만 응시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고개를 들어 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재판 내내 둘의 시선은 한순간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1m 남짓한 둘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29일 오전 10시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선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박근혜 전 대통령(65)과 최순실씨(61)에 대한 공판이 진행됐다.
재판부가 입정한 직후인 오전 9시59분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재판부를 한 번 쳐다본 후 시선을 살짝 아래로 둔 채 빠르게 피고인 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리에 앉은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탁자 위에 놓인 재판 관련 문서를 집어 읽어내려갔다.
곧이어 최씨가 법정에 들어왔다. 최씨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최씨는 피고인석으로 걸어가며 정면만 응시했다.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박 전 대통령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계속 문서에 머물렀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을 상대로 증인신문이 시작되자 박 전 대통령은 다시 자신의 앞에 놓인 재판 관련 서류를 읽어내려갔다. 최씨도 서류를 읽긴 했지만 박 전 대통령에 비해 변호인과 상의를 많이 했다.
30분가량의 검찰 주신문이 끝나기 직전, 변호인 신문 차례가 다가오자 피고인석이 잠시 바빠졌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에게 말을 걸었고, 박 전 대통령은 의자를 당겨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 전 대통령의 시선은 유 변호사가 있는 왼쪽으로 살짝 향했다.
동시에 이 변호사는 자신의 뒤편에 있는 변호사에게 말을 건네기 위해 몸을 뒤로 젖혔다. 박 전 대통령이 앞으로 나오고 이 변호사의 몸이 뒤로 향하면서 최씨와 박 전 대통령 사이에 시야가 잠시 열렸다.
최씨는 자신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변호사와 이야기하는 박 전 대통령에게 살짝 시선을 줬다. 한 번 살핀 후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가 조금 길게 한 번 더 쳐다봤다. 유 변호사와 이야기하는 박 전 대통령은 최씨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최씨도 곧 시선을 다시 돌렸다.
이후 양측은 오전 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오후 12시18분 휴정이 되자 박 전 대통령은 즉시 변호인들과 법정에서 나갔다. 이전 재판에서 휴정하면 보통 자리를 바로 떴던 최씨는 법정에 남았다. 박 전 대통령을 등지고 그가 법정에서 나갈 때까지 자신의 변호인과 대화를 이어갔다.
themoon@news1.kr
최씨가 피고인석으로 다가오자 최씨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가 일어서서 그를 맞았다. 180㎝에 가까운 이 변호사의 큰 키에 뒤편에 있던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모두 가렸다. 최씨도 이 변호사에게 눈길을 주며 인사했다. 박 전 대통령은 고개를 파묻고 서류에 집중했다.
둘은 서로 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볼 수 있었지만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 내내 박 전 대통령은 정면이나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재판부만 응시했고, 최씨도 정면 또는 왼쪽의 방청석 쪽을 주로 쳐다봤다.
최씨는 자신의 변호인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재판에서 주로 혼자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 목 스트레칭을 하고 메모를 했으며 물을 따라 마셨다. 박 전 대통령은 오른손바닥을 살짝 들어 쳐다보면서 20초 동안 엄지손가락을 다섯 번가량 폈다 굽혔다 하기도 했다. 볼펜을 만지작거리며 뭔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도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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