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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戀人) 간의 '데이트 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등 데이트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희생자가 매주 1명꼴로 발생할 정도다.
데이트 폭력은 현재 또는 과거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성적 공격행위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폭언이나 협박에서부터 폭행, 상해, 강간, 심지어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죄형태로 발생한다. 데이트 폭력은 연애 감정에 기초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행위라는 점에서 피해자가 일상적으로 반복된 위험에 노출될 여지가 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데이트 폭력의 특성을 고려해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위험상태에서 곧바로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엄상필 부장판사)는 최근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자 격분해 목을 졸라 살해하고, 야산에 구덩이를 파 시멘트와 함께 시신을 묻어 사체를 유기한 혐의(살인·사체유기 등)로 기소된 A(25)씨에게 징역18년을 선고했다(2015고합486).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1단독 임성철 판사는 지난달 27일 여자친구와 말다툼을 하다가 얼굴을 때리고 어깨를 밀어 넘어뜨린 후 발로 마구 짓밟아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상해·폭행)로 기소된 B(22)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2015고단757). 임 판사는 판결문에서 "B씨는 피해자인 여자친구가 계속되는 폭행으로 의식을 잃자 길에 그대로 방치한 채 도주했다"며 "지나가던 행인이 피해자를 발견해 구조하지 않았다면 자칫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고 질타했다.
애인살해
2012년 47명, 2013년 49명, 지난해 47명
성(性)과 관련된 데이트 폭력 사건도 속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김우수 부장판사)는 지난달 23일 여자친구를 강간하고 감금한 혐의로 기소된 C(31)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2015고합655). C씨는 여자친구가 잠시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이유로 쌍화탕 병으로 머리를 여러 차례 때린 혐의도 받고 있다. C씨는 폭행으로 쓰러진 여자친구를 강간하고 15시간이나 감금했다.
또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진세리 판사는 최근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자 모텔에서 휴대폰으로 찍어뒀던 나체사진을 보여주며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여자친구 머리와 얼굴을 때려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상해·협박 등)로 기소된 D(36)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기도 했다(2014고단2555).
매년 60명 넘어
◇매주 1명꼴 애인에게 희생… 성범죄도 증가세= 통계를 살펴보면 데이트 폭력은 잔혹할 뿐만 아니라 끊이지 않고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피의자는 2011년 47명, 2012년 47명, 2013년 49명, 지난해 47명으로 매년 50명에 육박하고 있다. 애인에게 살해되는 희생자가 매주 1명씩 발생하는 셈이다. 애인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피의자도 최근 4년 동안 모두 252명에 달했다. 매년 60건 이상씩 벌어지는 셈이다.
2013년 533명으로
성관계를 거부하는 여자친구를 강간하거나 강제추행하는 등 연인간 성범죄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경찰이 관련 범죄로 송치한 피의자는 2011년 388명에서 2012년 407명, 2013년 533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483명으로 약간 줄어들긴 했지만 연간 500건에 육박하는 수치다.
애인의 은밀한 신체부위를 촬영하는 등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등에 해당하는 성풍속범죄 피의자도 2011년 94명에서 2012년 159명, 2013년 233명, 2014년 269명으로 늘어 3년새 3배 가까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트 폭력 가운데 가장 많은 폭행, 상해, 협박 등 이른바 '폭력범죄' 피의자도 2011년 8256명, 2012년 8636명, 2013년 8203명, 2014년 7828명으로 집계됐다.
3년새 3배 늘어
통상적으로 실제 발생한 범죄보다 신고 또는 적발된 범죄 건수가 적다는 점과 데이트 폭력의 특성상 사건 발생 후에도 피해 사실을 감추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데이트 폭력 피해 사례는 경찰의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복된 폭력 위험 노출… 피해자 보호장치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사이가 멀어지거나 헤어졌을 때 데이트 폭력이 빈발하고, 폭력의 정도도 심해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이 폭력의 위험으로부터 즉각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 보호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이현곤(46·사법연수원 29기) 새올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가정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서 폭력행위자에 대한 보호처분과 임시조치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별도의 입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데이트 폭력이 일상적으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사례가 많은 점을 감안해, 연인관계를 포함해 지속적 괴롭힘과 위협이 발생하는 경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이른바 '스토킹 방지법' 등으로 피해자 보호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13년 8203명, 2014년 7828명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도 "아동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해 사회적 관심을 쏟고 있는 것처럼 연인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과 피해자 보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지속적 괴롭힘은 경범죄처벌법에서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로만 처벌하고 있을 뿐이어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연인 사이에 발생한 1회적 폭력 그 자체는 형법 등 기존 법률로 다스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안전하게 결별하기까지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지속적 괴롭힘이 있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임시조치를 취하는 등 위협에 노출된 약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은 각 주마다 '스토킹 방지법'을 규정하고 있으며 일본도 '스토커 행위 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시행 중이다. 독일과 영국도 이와 유사한 법률로 지속적 괴롭힘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시행중이다. 우리나라도 19대 국회에서 관련 법률 제정안 3건이 발의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위원장 이한성)에 회부됐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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