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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한국은 진정 '표절을 아는 몸'이 됐나???
상세 내용 작성일 : 15-12-31 11:36 조회수 : 275 추천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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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매체가 2015년을 정리하는 시기가 왔다. 허핑턴포스트 12개 에디션도 각자의 2015년 뉴스를 선정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메르스 유행을 올해의 가장 의미심장한 뉴스로 선택했다. 그 외에도 올해 한국을 심장부터 꺼내어 뒤흔든 사건은 한둘이 아니다. 그중 많은 사건은 경복궁 뒤에 자리잡은 한 고즈넉한 건물로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다만 사회적, 문화적으로 한국의 가장 오래된 환부 중 하나를 통째로 꺼내어 뒤흔들었다는 점에서 신경숙 표절 사태를 올해의 가장 의미심장한 뉴스 중 하나로 돌아봐도 썩 어울리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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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사태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이응준 작가가 기고한 블로그로부터 시작됐다. 이응준은 신경숙의 '전설' 일부분이 김후란 시인이 번역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의 한 대목을 표절했다고 지목했다. 침묵을 지키던 신경숙은 "해당 작품을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변호하고 나섰다. 창비는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고 했다.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는 말은 대단했다. 그 문구를 누가 생각해냈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한국 역사상 매체를 통해 공개된 수많은 사과와 해명 중 그만큼이나 방어적으로 공격적인 문장은 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사과와, 해명과, 사과 비슷한 해명과, 해명 비슷한 사과와, 그에 대한 짜증 섞인 사과 비슷한 것들이 반복됐다.

사실 이응준 작가의 글을 처음 받았을 때 우리는 고민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이 글을 싣는다고 거대한 문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주류 매체들이 움직일까,하는 고민도 그중 하나였다. 매체들이 움직이기 전에 소셜 미디어가 먼저 움직였다. 소셜 미디어가 움직이자 매체가 움직였다. 한국 매체가 움직이자 BBC, 가디언 등 해외 매체가 움직였다. 신경숙 표절 사태는 국민적 우상의 성전에 거울을 비추는 시도이자,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역으로 주류 매체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준 어떤 상징적인 사건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표절을 통해 하나의 신화가 무너진 사례는 다른 문화 영역에서도 이미 존재한다. 신성일과 엄앵란, 트위스트 김이 출연했던 '맨발의 청춘'(1964)은 30여년간 한국의 60년대를 상징하는 청춘 영화였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는 바로 전해인 1963년 작 일본 영화 '진흙투성이의 순정'을 베낀 일종의 '복사 영화'였다. 표절에 둔감했던 시절의 '번안영화'라는 변호도 있지만, 이제는 '맨발의 청춘'을 한국 영화계가 자랑할 만한 유산으로 여기는 건 거의 불가능해졌다. 9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작품 중 하나인 '투캅스'는? 자, 이 영화를 명확하게 표절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법률적인 자문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를 본 적이 있다면 '투캅스'를 완벽하게 변호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한국은 부인할 수 없는 표절 사회다. 문제는 이 표절이 마치 겨울 스웨터에 깊숙하게 박힌 고양이의 털처럼 완벽하게 모든 곳에 스며든 나머지 표절 자체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거의 무용한 일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혹은, 종종 한국인의 무의식은 명백한 표절을 거부하고 싶어한다. 새우깡은 일본의 갓파에비센이 낳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우깡은 여전히 우리의 '국민 과자'로 남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응준 작가의 단호한 지적을 통해 한국은 우상의 표절을 지적하고 파헤쳐서 침묵하는 카르텔을 뒤흔드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됐다. 그 기쁨은 지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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