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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많이 타서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아줌마, 남자 좋아해서 택시기사 하죠?”
성탄절인 25일 0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울 광진구 자양2동을 막 벗어나던 택시 안에 방금 탑승한 40대 남성이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택시 운전, 안 힘드냐”는 물음에 여성 택시기사 김혜정(50·가명)씨가 “적성에 맞아 좋다”고 친절히 답했더니, 이런 성희롱 발언이 튀어나왔다. 전날 밤 9시부터 기자가 ‘택시 기사 연수생’으로 위장해 동승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랬다.
김씨는 룸미러로 승객을 잠시 쏘아본 뒤 입을 굳게 다문 채 운전에 집중했다. 불편한 침묵이 계속되자 곧 눈치를 살피던 승객이 “농담”이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승객이 목적지에 내린 뒤에서야 말문을 연 김씨는 “예전에는 이런 질 나쁜 손님 만나면 화도 내고 그랬는데 이제 그냥 입을 닫는 게 가장 마음 편한 것 같다”며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늦은 밤, 서울 도심을 누비는 여성 택시기사들이 승객들의 성희롱·추행, 성차별 발언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술자리가 잦아지는 연말이면 취객의 추태가 극성에 이른다.
기자가 동승한 김씨의 차량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보호장치들로 가득했다. 운전대 좌측 부분에 설치된 휴대전화 거치대는 김씨가 승객 몰래 비상연락을 취하기 위한 용도이고 운전석을 향해 있는 블랙박스 카메라는 사태 이후 발뺌하는 승객에 맞설 ‘무기’였다. 김씨는 “남성 승객이 경기 외곽지역으로 목적지를 부르면, 꼭 친구에게 미리 도착시간쯤 전화를 걸어 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여성 택시기사로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면서 씁쓰레했다.
7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김씨는 승객의 온갖 추태를 직접 몸으로 겪었다. “다음에 택시를 이용하게 되면 전화하겠다”며 개인 연락처를 받아낸 뒤 “밥을 먹자”, “데이트를 하자” 등 수작을 거는 경우는 애교에 불과했다. 계산을 하는 척하며 일부러 몸을 갖다 대거나, 아예 조수석에 앉아서 대놓고 김씨의 손이나 허벅지를 만지는 승객도 부지기수였다. 2년 전에는 한 남성이 “일당만큼 돈을 줄 테니 근처 모텔에서 3시간만 놀자”고 성매매를 제안하기도 했다. 두 아들의 엄마인 김씨는 “처음 그런 경험을 당했을 때는 항의도 못하고 그저 운전대만 붙잡고 있었다”며 “운행이 끝난 뒤 혼자 엉엉 운 날도 많다”고 말했다.
여성 택시기사를 향한 성차별은 곳곳에서 목격됐다. 이날 경기 안산 한대앞역 부근에서 술에 취해 몸을 휘청거리는 30대 남성 3명이 손을 흔들어 김씨의 택시를 불러세웠다. 이 중 1명이 안산 모처에 가자고 목적지를 말하자 김씨는 “서울 택시라 경기지역 내 운행은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 남성은 조수석쪽 살짝 열린 창틈으로 김씨 얼굴을 확인하고는 “아∼씨X, 여자야, 여자 기사라 뭘 모르나봐”라고 말하고는 일행을 향해 몸을 돌렸다. 김씨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차를 이동시켰다.
김씨는 이날 새벽 2시가 돼서야 운행을 마치고 동대문구에 있는 택시회사로 돌아갔다. 이날 번 돈은 14만9800원. 일일 사납금인 16만원에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경기 안산까지 갔다가 빈 차로 돌아왔더니 그렇게 됐다.
이 시간쯤 되면 회사 건물에 불 켜진 곳은 경비실과 남자화장실 2곳뿐이다. 건물 2층에 이 회사 사무실 여직원이 쓰는 여자화장실이 있었지만 야간에는 문이 잠겨 있었다. 김씨는 “회사나 기사식당이나 여성 기사들을 위한 화장실은 찾아볼 수 없다”고 푸념했다. 그 때문에 김씨는 택시 운행을 시작한 이후 두 차례나 방광염에 걸렸다. 도로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전체 택시기사(28만455명) 중 여성은 1.45%(4056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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