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박 대통령 굴욕? 승부수?…박지원 “우린 함정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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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09 10:03 조회수 : 488 추천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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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모욕 감수하고 국회 방문 하야 외치는 야당 시위대 앞 지나
야권, 총리·장관 지명 등 합의 난제 지분 싸움 땐 되레 책임 떠안을 수도김종인 “시간벌기용 기막힌 한 수”
8일 오전 10시28분 국회 본관. 박근혜 대통령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야당 의원들과 보좌진 수십 명이 “하야하십시오”라고 외쳤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 떼라’ ‘헌법파괴 국기문란’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도 흔들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의 영접을 받고 계단을 올라온 박 대통령은 시위대와 마주치자 이들을 쳐다보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곧장 의장실로 향했다. 이 영향 때문인지 박 대통령과 정세균 의장의 회담은 13분 만에 끝났다. 박 대통령은 서두에 곧바로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에 좋은 분을 추천해 주신다면 그분을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방문 요지를 밝혔다. 정 의장은 “대통령께서 힘든 걸음을 하셨다고 생각을 하고, 이럴 때일수록 민심을 잘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배석자는 “두 사람 모두 굉장히 말을 조심스러워하는 바람에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고 전했다.
회담 후 박 대통령은 하야 구호를 외치는 야당 측 시위대 앞을 다시 지나 본관 정문으로 퇴장했다. 박 대통령 퇴장 시 배웅 나온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현직 대통령으로선 국회에서 전례가 드문 굴욕을 당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일단 외형상으론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지명할 때부터 김 후보자에게 내치(內治)의 전권을 맡기겠다는 입장이었다”며 “지명 절차상의 문제로 야당이 반발하면서 ‘김병준 카드’의 의도를 의심받는 상황이 되자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실타래를 다시 풀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김 후보자 지명을 사실상 무효화하는 상황에 대해 부담감을 표시했지만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들이 “이 길 외엔 방법이 없다”며 강하게 설득했다고 한다. 특히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친박계 핵심들이 지난 7일 김 후보자 지명 철회를 건의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총리 지명권 국회 이양’이 굴복이 아니라 일종의 승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공을 받아든 야당 일각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앞으로 관심이 국회에서 누구를 총리 후보자로 뽑느냐에 쏠릴 수밖에 없어 박 대통령으로선 한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또 정파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해관계가 엇갈려 총리 후보자 지명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책임총리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려면 정파별로 장관 몫을 배분해야 하는데, 이 문제도 난제가 될 전망이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에게 있던 책임을 야당에 떠안긴 대통령의 기가 막힌 한 수”라고 평가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기자들과 만나 “우린 이미 대통령이 던져놓은 함정에 빠져들었다”며 “내가 (후보를) 추천하면 민주당에서 들어주겠냐, 새누리당에서 들어주겠냐.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추천하면 내가 들어주겠냐. (국회의 총리 추천은) 안 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전날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사실상 야당이 요구하는 대로 했는데 함정이라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총리지명권을 국회로 넘기라는 요구는 애초에 야당이 제기했다. 이제 와서 거절할 명분을 만들기도 애매하다는 게 야당의 딜레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야당도 국정공백을 최소화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조속히 총리 인선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앞으로 내치의 전권을 갖는 새 총리가 취임하면 박 대통령은 명시적 발표가 없어도 사실상 2선 후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박 대통령이 추가로 내놓을 수 있는 수습책으론 ‘새누리당 탈당’ 카드 정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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