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는 1965년생이다.

2017년 101번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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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퍼펙트 크라임 Crimen ferpecto (2004) : 살아있는 시체들을 슬픈 광대로 만드는 역능을 찬양하라

유쾌하다. 무엇보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균형의 반전을 갖추고자 하는 지향점이 본편의 미덕이다. 더하자면, 본편에는

감독의 얼굴인 테렐레 파베즈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가 40년 정도 젊었더라면 맡았을 주인공을 20대  여배우가 담당한다.

당찬 여자 캐릭터와 카사노바의 패가망신과 구사일생이라는 뼈대로 규정될 수 있는 본편은 전반적으로 장르극의 외형을

고집한다.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춘 사회 비판과 조롱 그리고 적당한 출구가 윤리적인 지탄을 슬쩍 피해나가는 지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왜 주인공 라파엘은 왜 응징받지 않고 살아남는가라는 서사로부터의 사사로운 질문을 던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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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 질문이야말로 본편의 제목인 ' Crimen ferpecto'에 딱 맞아떨어지는 유실 조각이기 때문이다. 오프닝은 물론이고

본편 이곳저곳에서 주인공 라파엘은 관객을 향한 나레이션, 1인칭 게임 시점, 중심축 좌표 등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명징하게

각인시킨다. 즉, 그는 본편에서 추락함으로 인해 극적 쾌감을 선사하기 위해 불필요하고 비윤리적으로 극상승의 위치에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이 부재하여 어떤 혈연 관계도 유무선으로 드러내지 않는 홀홀단신이어야만 하는 사유가 있다.

그는 중산층 가부장제에 대해 남성 노예라는 왜곡된 시선을 담지함으로서 결단코 이성애적 결혼의 선을 넘지 않는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편으로는 여성 육체에 대한 충동과 지배적인 시각에 사로잡힌 중간 관리자의 권력성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가부장제 자체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가 그의 백화점 내 출산이라는 출생의 비밀과 어긋난 채로 연결된다.

한마디로 라파엘은 자본주의 심장부에서 태어났지만 그와 직결되는 가부장제에는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물이다.

초반부에 그 스스로가 설명하듯이 '보이는 걸로 판단할수 없는' 캐릭터로서 영화는 그를 카사노바 추락남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엄밀히 따지자면, 본편은 라파엘이 자신의 집인 백화점 밖으로 나와서 자기 변형에 성공하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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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세계 속 인물들 중 일부( <마녀사냥꾼>, <커먼 웰스>)가 사실상의 범죄 음모에 의해 탈취한 자본을 종결시까지

망실하지 않고 머니 환타지를 지속하는 것과 비견할 때 본편의 라파엘이 자본주의 비판론의 총아인 백화점 화재를 통해

자신의 지배인 지위를 페기하는 것은 차별화된 선택이지만, 그보다 감독의 기조와 근접한 중핵적인 것은 결국 누구도 진상을

알지 못한 채 종결된다는 구성이다. 이로부터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안토니오의 죽음(비록 사고사일지라도)과 시체 유기 등에

대해 영화가 취하는 대체 전략은 안토니오를 희극적인 유령으로 재등장시켜 죄책감의 긴장을 소멸시키는 동반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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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원제를 살펴보신 관객은 인지했겠지만,  통용되는 영제와는 달리 ​'ferpecto'의 첫 스펠링의 'f'는 'p'의 오자이다.

극히 친절하게도 이는 극중에서 범죄 장르 비디오를 대여하는 라파엘이 종업원에게 '온전 범죄'의 오기를 지적함으로서

명백하게 드러나는데, 여기서 '완'과 '온'의 차이가 서사 상으로 무엇을 지시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관객의 몫임은 전술한 바다.

기이하게도 안토니오의 죽음과 시체 소각 그리고 라파엘의 소멸 전략이 모두 완전 범죄화에 성공했음이 서사상 확연하다면

라파엘이 언급한 '온전범죄'가 지칭하는 바는 ​범죄 자체보다 자본과 욕망이라는 세계에 대한 불구성에 대한 조롱에 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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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거시적인 추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답은 지연된다.  과연 안토니오의 사고사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첫손이다.

안토니오의 외형 중 가장 선연한 것은 그의 가발인데, 그는 곧 대머리로서 남성적 매력이 경쟁자 라파엘에 비해 열등하다.

그는 어쩌면 본편에서도 스스로 유령의 신분으로 부추기듯이 여성 로우데스의 남성격에 비견될 수도 있다. 하지만, 외형만이

아닌 안토니오를 설명하는 단서는 극히 부족하다. 그가 지배인으로 승진하고 나서 라파엘에게 가하는 응징의 파편들은 그저

속좁은 보복에 불과할 뿐이다. 무엇보다 그의 세일즈에 대해서 영화는 어떠한 부가 설명이 없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전술했던 백화점=자본주의라는 관점으로 귀환하자면 그리고 라파엘/안토니오라는 짝패를 감안하자면 안토니오의 죽음은

백화점 바깥으로 추방되어야한다는 의미에서 추출가능하다. 즉, 고객에게 판매하는 세일즈맨은 배제되어야한다는 과격함이

곧 감독의 정치적 입지인 것이다. 여기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식의 급진성이 있다. 자본주의 내 백화점이라는 유통 경로에

대한 무한한 부정이 안토니오의 사고사에 가해짐으로서 그는 고객이 의류를 입어보는 피팅룸의 옷걸이에 걸려 죽어야한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온 질문, 동일한 양면이자 경쟁자인 라파엘은 왜 살아남아야하는가에 대한 정답은 그의 온전범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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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쾌거는 백화점 화재다. 놀랍게도 화재 발생 이후 소방차 출동이 보이지 않는다. 스프링쿨러 외에 어떤 소화 시도도 없음은

백화점의 전소를 기원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화재의 아수라장의 와중에도 카메라가 손님들이 모두 하나씩 물품을 절도하여

탈출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담아내는 블랙 유머를 유지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그들에게 백화점 화재는 일종의 잔치에 불과하다.

성장 장르극의 맥락에서 보자면 라파엘의 백화점 화재 유발은 그거 작은 화장실 담배불로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자신의 실질적 아버지인 백화점을 파괴함으로서 부정할 수 있는 발판을 완성했다는 점에서도 가출이 아닌 출가의 의미가 있다.

그가 약간의 성형 수술을 했다는 첨언을 굳이 부가하는 이유는 출가의 맥락을 더하는 것이라면, 그의 새 매장이 넥타이를

판매하는 곳이라는 점은 가부장제의 억압에 대한 조롱으로 읽는 장단을 맞추어도 좋겠다. 여기에서 하나더 추방의 묘미를

부가하자면, 라파엘과 성적 관계를 맺는 여성 종업원들은 그들이 자본주의 가부장들이 원하는 성적 매력의 충만함으로 인해

로우데스에게 지목되어 해고되어야한다. 그녀들은 사실상 백화점과 정치적으로 동급이며, 오히려 그녀들의 자리에 평범한

여성들이 대체되었을 때 매상이 올랐다는 기지는 박수를 처줄만하다. 이는 데뷔작 <액션 무탕트>의 흔적을 이어가는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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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편의 최고 미덕이자 급진성은 여주인공 로우데스로부터 발굴된다. 그녀는 극중 유일하게 가족/집을 선보일 수 있는 인물인데.

그나마도 가부장은 거의 '정지된 상태'이며 다른 가족 역시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기민한 정상성과는 거리가 있다. 예상대로

그녀가 안토니오의 시체를 절단하고 호락호락 라파엘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고 단검의 반격을 행할 때 감독은 그녀를

윤리적 차원에서 존재론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옹립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그녀의 신의 한수는 엔딩에서 보여진 광대 패션인데,

​유행 신상이라면 무엇이라도 통용되는 자본주의에 대해 슬픈 광대라는 조롱을 보내는 감독의 얼굴로 그녀는 능히 성공할만하다.

이로서 스펠링이 어긋난 '온전 범죄'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페기할 수는 없지만 조롱의 미학을 투척함으로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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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크라임>은 ​ 백화점에서 태어나고 자란 판매의 신인 한 남자의 백화점 밖으로의 출가에 대한 자결 퍼포먼스이며

자본주의 가부장제와 여성성의 상품화에 대해 광대 패션과 슬래셔 액션으로 응수하는 자화자찬의 흥겨운 화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