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그는 민노총 조합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집회에 참가해 대회사를 낭독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경찰은 폭력시위로 얼룩진 그날 집회의 책임자로 한 위원장을 지목하고 검거전담반 인력을 늘리는 등 본격적으로 그의 신병 확보에 나섰다.
그는 집회 때 "나라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자", "내가 책임질 테니 청와대로 진격하자"는 등의 발언을 하며 폭력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밤 조계사로 피신했다. 이어 과거 한진중공업 사태 등을 중재한 조계종 화쟁위원회에 신변보호와 중재를 요청했다. 화쟁위는 한 위원장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경찰은 바로 조계사 진입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차 집회에서 불법행위를 한 혐의로 참가자들을 대거 수사선상에 올리고 당일 한 위원장 검거를 막은 '사수대' 조합원 등을 구속하는 등 외부에서 압박을 가해왔다.
이어 11월 21일에는 민노총 본부를 포함, 총궐기 집회에서 벌어진 불법행위를 주도하고 한 위원장 도피를 도운 혐의를 받는 8개 단체 사무실을 동시다발로 압수수색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여 갔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이달 5일 2차 총궐기 집회를 독려하는 등 대정부 투쟁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아울러 정부가 '노동 개악' 시도를 중단하고 2차 집회가 보장되면 거취를 밝히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경찰은 조계종 화쟁위의 중재 요청에 한 위원장의 신병 문제는 화쟁 대상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2차 집회가 가까워지면서 경찰과 진보단체 간 긴장도 높아졌다. 경찰이 2차 집회'를 금지하자 진보단체들은 집회 강행 입장으로 맞섰다. 정부는 '복면 시위' 처벌 수위를 높이겠다고 경고하는 등 전방위로 민노총을 압박했다.
2차 집회를 닷새 앞둔 지난달 30일에는 한 위원장이 큰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일부 조계사 신도회 관계자들이 나서 한 위원장의 퇴거를 종용하며 몸싸움까지 벌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 위원장의 옷이 일부 찢어지기도 했다. 그는 옷을 스스로 벗어 던져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신도회는 논의 끝에 한 위원장에게 이달 6일까지 말미를 주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진보단체들이 경찰을 상대로 낸 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5일 집회는 합법적으로 개최됐다. 5만명(경찰 추산 1만4천명)이 참가한 당일 집회는 충돌없이 마무리됐다.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한 위원장은 현장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11월 14일 우리 민중의 투쟁은 정당한 투쟁이었다"고 주장했다.
집회가 끝난 5일 밤부터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 한 위원장을 만나 그의 거취를 논의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신도회가 제시한 시한인 6일까지도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경찰은 1차 집회 때 벌어진 폭력시위에 대해 형법상 소요죄 적용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재차 압박에 들어갔다.
다음날인 7일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이 중단되면 나가겠다"는 한 위원장의 입장이 나왔다. 그는 애초 6일까지 퇴거하겠다고 약속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찰은 최후통첩을 날렸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한 위원장에게 "8일 오후 4시부터 24시간 안에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으면 영장을 강제집행하겠다"고 밝히며 자진출두를 요구했다.
경찰이 제시한 시한인 9일 오후 4시까지도 한 위원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은 조계종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찰력을 조계사에 대거 투입, 한 위원장이 머물던 관음전 입구를 확보하고 체포작전에 들어갔다.
경찰이 관음전 문에 걸린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기 직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면서 사태는 급반전됐다.
자승 스님은 "10일 정오까지 한 위원장 거취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작전 중단을 요청했고 경찰은 내부 논의 끝에 작전을 보류했다.
한 위원장은 결국 이날 자진출두 형식으로 조계사에서 나오기로 했다. 민노총도 전날 밤 긴급회의를 열어 격론 끝에 한 위원장의 결단을 수용했다.
한 위원장은 관음전 밖으로 나와 대웅전에서 절을 올린 뒤 기자회견을 열어 마지막 입장을 밝히고 경찰차에 몸을 싣는다.
- [닉네임] : 짱깨왕[레벨]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