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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벼룩시장에는 그 장소와 짝을 맞출 수 있는 '셀러(Seller)'들이 존재한다. 가령 파리의 벼룩시장을 떠올리면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주로 집에서 쓰던 낡은 그릇들을 판매한다. 반면 동유럽의 벼룩시장을 대표하는 셀러의 이미지는, 배가 남산처럼 나온 중년 남성의 모습이 압도적이다. 헝가리나 불가리아에서 만난 이들은 사실 판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느라 바빴다.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미국 포틀랜드의 벼룩시장으로 간다면, 청바지에 체크 셔츠를 입고 부츠를 신은 카우보이가 셀러로 나와 1950년대의 낡은 가구를 팔지 않을까 싶다. 도쿄 벼룩시장의 셀러들을 나름 규정해보자면,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 <워터보이즈>에 나오는 오합지졸 청춘들이 떠오른다. 주말이면 다들 이곳에 나와 회합을 하고, 그렇게 번 돈을 가지고 다시 취미를 위해 수집품을 사러 나갈 것 같은 풋풋한 청춘의 이미지.
도쿄에만도 벼룩시장이 워낙 많지만 그중 도쿄 도청 근처에서 열리는 신주쿠 벼룩시장은 추천할 만한 명소다. 규모가 아주 크진 않지만 전문 상인들보다 가진 물건을 처분할 개념으로 짐을 싸온 이들이 많아 다른 곳보다 값이 저렴하다. 셀러들 중 상당수가 젊은이들인데 가진 물건들을 판매하는 이들이 대다수고 더러는 아예 즉석에서 뜨개질을 해 작은 파우치 같은 것들을 판매하기도 한다. 물건의 종류도 제각각인데다 가격도 대중이 없다. 사고 싶은 가격을 대충 제시하면 신기하게도 대부분 그 가격에 낙찰받을 수 있다. '부르는 게 값이다'란 말의 주체를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에게 적용시켜도 크게 무리가 없는 공간이 바로 이곳인 셈이다. 이곳에서 건진 쓸데없는 전리품 중 하나는 단돈 450엔짜리 빈티지 드레스였다. 셀러가 자신이 입던 원피스라며 구매를 종용했다. 핑크빛 볼터치를 한 예쁜 소녀와 나의 간극은 어림짐작해도 구만리. 도통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았는데, 코디 방법까지 알려주며 시도해보라는 통에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원피스는 지금 장롱 한구석을 얌전히 차지하고 있다.
- [닉네임] : 정주리[레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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