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호 이어 새 지폐 5년뒤 발행
구한말 화폐-철도-전기 도입 주도, 日선 ‘근대 경제의 아버지’로 불려
다른 지폐도 제국주의 대표 인물들… 애국심 강조 아베 역사관 반영 논란
일본 정부가 2024년 발행을 목표로 제시한 1만 엔권 새 지폐의 도안. 앞면에는 구한말 한반도 경제 침탈과 관련된 인물인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의 초상화가 실린다. 아사히신문 제공
다음 달 1일 연호(年號)를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꾸는 일본이 지폐 도안 변경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새 지폐에 들어갈 초상화에 구한말 한반도 경제 침탈과 관련된 인물이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9일 기자회견을 열고 1000엔권, 5000엔권, 1만 엔권 등 3가지 지폐의 인물 초상화를 바꿔 2024년부터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새로 제작될 1000엔권에는 ‘일본 의학의 아버지’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 5000엔권에는 메이지유신 시기 ‘일본 최초의 여성 유학생’ 쓰다 우메코(津田梅子)의 얼굴이 실린다. 고액권인 1만 엔권에는 ‘일본 근대 경제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1840∼1931)의 초상화가 들어간다.
시부사와는 일본 최초 은행인 일본제일국립은행(현 미즈호은행)을 설립했으며 도쿄가스 등 500여 개의 기업 경영에 관여한 인물이다. 도쿄상과대, 도쿄고등상업학교, 이와쿠라철도학교 등의 설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한반도에서는 구한말 화폐를 발행하고 철도를 부설했으며 경성전기(현 한국전력)의 사장을 맡아 경제 침탈에 나선 인물로 평가받는다. 일본제일국립은행이 대한제국에 압박을 가해 1902∼1904년 한반도에서 발행한 지폐에도 당시 은행 소유자였던 시부사와의 초상화가 실렸다.
박삼헌 건국대 아시아콘텐츠연구소장은 “시부사와가 여러 회사를 설립해 근대화의 초석을 마련했지만 식민 지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 지폐 초상화가 대부분 제국주의 시기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라 현 일본 정부의 역사관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새 연호 ‘레이와’가 전통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서 유래하는 등 애국심, 자긍심 등을 강조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치 철학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박훈 서울대 교수(동양사학)는 “조선 식민지화를 위해 한반도에 기업을 세웠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많다”고 밝혔다.
한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최근 존재감이 부쩍 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유일하게 여야가 대결했던 7일 홋카이도 지사 선거에서 스가 장관이 지원한 스즈키 나오미치(鈴木直道) 전 유바리(夕張) 시장이 당선돼 ‘킹 메이커’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은 최근 월간 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스가 장관이 ‘포스트 아베’ 후보로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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