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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 고민하던 이중선씨, 어엿한 전기공업사 CEO로]
"전기 기술자 아버지 닮기 싫어 학교 빼먹다 퇴학당할 뻔… 막상 일 배우니 딱 내 적성
한명도 없던 직원, 이젠 40명… 모교에 부친 이름으로 장학금"
그가 세상을 달리 보게 된 것은 고교 졸업 후 아버지 조수(助手)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렇게 하기 싫어 한 기름밥 먹는 일인데, 이상하게도 갈수록 흥미를 느꼈다. 넉살이 좋아 공사장 일꾼들과도 잘 어울렸다. 이씨는 "자격증 따기 위한 학교 공부와 달리, 현장 일은 곧바로 결과가 나왔다. 적성에 맞았다"고 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공사장을 다니다 보니 학창 시절엔 닮기 싫었던 아버지도 달라 보였다. 30년 경력이 넘은 전기 기술자 아버지는 이씨 눈에 마치 마술이라도 하듯 일을 해냈다고 한다. 이씨는 "그때까지는 아버지를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쯤으로 생각했는데, 실제 일을 배워보니 아버지는 설계·시공·유지보수·회계·영업을 다 할 줄 아는 수퍼맨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착실히 일을 배워 사업을 키워나갔다. 2006년에는 부자가 힘을 합쳐 연 매출 5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즈음 아버지가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2년을 꼬박 투병한 아버지는 병원비 등으로 빚만 쌓아둔 채 세상을 떠났다. 남은 것이라고는 이씨 외에는 직원 1명도 없는 전기공업사 점포뿐이었다.
그때부터 이씨는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았다. 작은 전기 공사라도 준다고 하면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이씨는 "큰 공사든 작은 공사든 무조건 응찰했고, 공사를 따내면 정성을 들여 마무리까지 꼼꼼하게 했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 지역에 '젊고 일 잘하는 전기공업사 사장이 있다'는 말이 돌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 7년 만에 회사는 연 매출 170억원에 직원 40여 명 규모의 중소기업으로 컸다. 대전 지역 전기공업사 중 2~3위를 다툰다. 올해엔 서울의 한 대학교 건물 전기·배선 공사도 따냈다. 충남기계공고 시절 은사 세 명도 고문으로 모셔왔다. 학교 선생님들 사이엔 '만년 낙제생 중선이가 성공해 선생님들을 모셔간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이씨는 "고교 시절엔 늘 '나는 어차피 안된다'고 불평만 하고 지냈지만, 돌아보면 많은 분이 제 성공을 이끌었다"며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주려 하셨던 마술사 같은 아버지와 삐뚤어져 가는 저를 어떻게든 바로잡으려고 애쓰신 선생님들이 계셨다"고 했다.
이씨는 재작년부터 아버지 이름으로 모교에 장학금을 내고 있다. 이씨의 고3 담임 이재범(60) 교사는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이 있으면 중선이가 어떻게 알고 먼저 봉투를 보내온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교육부와 조선일보사, 방일영문화재단이 공동 제정한 '올해의 스승상'을 지난 4일 받았다. 이중선씨는 "아버지는 많이 못 배우신 분이었지만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기술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신감을 가르쳐줬다"며 "공부 잘하는 친구들처럼 대학에 가거나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했다고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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