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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시간이 무려 3시간에 육박하는 이 영화는 주제와 세트, 줄거리 - 모든 면에서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이다.
'디 아더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니콜 키드만과 덴마크의 명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만든 이 영화는 미국 로키 산맥의 고립된 작은 마을인 도그빌에서 벌어지는 한 일화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저예산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세트는 연극 무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소박하고 공개적이며 단순하기 그지없다. 아니, 연극 무대보다도 더 단순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장소는 도그빌이라는 마을로 한정된다. 지루할 정도로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기묘한 상황 설정과 니콜 키드만의 치밀한 연기력이다. 거기에 마을 주민들이 서서히 가학적으로 변하는 모습들은 인간성을 실험하는 가학극을 절정으로 치닫게 한다.
평화롭고 한적한 오지의 마을에 어느 날 총성이 울리고 학구적인 이상주의자인 한 마을 청년이 산으로 피신하는 아리따운 여인을 발견한다. 한눈으로 보기에도 도시적이고 부르조아적이고 성적 매력이 넘치는 젊은 여자다. 외지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곳으로 들어온 외길 밖에 없는 외딴 마을에서 갱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잠시 머물려는 그녀에게 첫눈에 사랑을 느낀 청년은 촌사람이지만 그녀의 운명을 결정하는 권력을 갖게 됐다는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우선 마을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어 2주일을 그곳에서 살게 해 주고 그 후로는 주민들의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게 되면 계속해서 머물게 해 준다는 것이다.
청년은 이 마을로 들어온 갱들을 속여서 돌려보내고 그녀에게 집집마다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해 놓으면 좋은 자질구레한 일들'을 해 주게 해서 숙식 제공 등의 경제적인 원조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갱들의 보복이 두려웠고 그녀의 도움을 원하지 않던 가난한 마을 사람들도 그녀의 도움에 익숙해지자 그녀에게 일을 맡기고 2주일 후에도 만장일치로 그녀를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마을 주민들은 남을 부려먹는 편리함을 알게 되니 계속 부리게 되고 작은 급료까지 주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이 그녀를 찾는 실종자 광고를 붙여 놓고 갔다가 나중에는 은행강도 용의자로 광고를 붙이자 사람들은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상금까지 걸리자 도그빌 주민들은 숨겨 놓은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용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에서 내쫓지 않고 더 오래 더 많이 일하고 급료는 더 적게 주게 된다. 그녀는 여자들과 어린이들에게는 잡일과 육아, 교육을 해 주고 남자들에게는 그 외에도 또 다른 욕망의 충족을 기대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현상금이 붙어서 경찰에 고발할 수 있다는 약점 때문에 그녀는 마을 주민 모두에게 음험한 가학의 대상이 되고 만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그녀는 온갖 조롱과 학대, 성추행과 강간의 대상이 되고 이를 못 견뎌 탈출을 시도하지만 마을 주민의 한 사람인 트럭 운전기사가 돈을 받고도 그녀를 속여서 다시 도그빌로 끌고 가자 교통비를 빌려준 청년은 그녀가 그 돈을 훔쳤다고 말한다. 청년은 나중에 그녀의 탈출을 돕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변명한다.
결국 그녀는 도주를 막기 위해 목에 개목걸이까지 채워져서 쇠사슬에 연결된 커다란 쇳덩어리를 끌고 다니게 된다.그러자 주민들은 그녀를 노골적으로 노예처럼 대하고 모든 주민들의 성적 노리개 역할까지 맡게 된다.
청년은 다시 마을 회의 때에 그녀가 마을 주민들의 모든 비밀을 폭로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 조언대로 하자 마을 주민들은 이를 부정하고 그녀를 뒤탈 없이 마을에서 내쫓는 것을 원하게 된다.
결국 청년은 갱이 주고 간 명함을 보고 전화를 걸어서 그녀를 데리고 가라고 한다. 그녀를 갱들에게 팔아서 갱들에게 죽게 함으로써 자신과 마을 주민들의 죄를 은폐하려고 하는 것이다.
청년은 결국 사랑보다는 권력,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며칠 후 갱들이 찾아오지만 그녀는 갱 보스의 딸이었고 자신의 연인을 사살한 아버지를 피해 도그빌에 은신해 있었던 것이다. 이 마을을 찾아온 갱들은 딸의 의사대로 마을 주민 모두를 죽이고 마을을 불태운다. 자신을 도왔지만 권력을 악용해서 자신을 끝없는 굴종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청년은 그녀 스스로 사살하고 만다.
이 영화는 인간이 지닌, 또는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권력의 야만적이고 이기적인 속성을 신랄하게 질타하고 있다. 소박한 촌사람들이 한 인간의 약점을 쥐고 악마처럼 흔들어대는 가학적인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실감나게 전달된다.
결국 마을사람들이나 살인을 일삼는 갱들이나 그 힘을 야비하게 행사하는 측면에서는 똑같다는 논리 속에 보스의 딸은 그들과 똑같이 자신의 권력을 최대한 이용해서 그들을 응징한다. 이런 충격적인 결말은 권력이란 인간의 윤리, 도덕, 가족, 사랑, 대인관계 등의 모든 미덕을 철저히 파괴하는 속성을 가졌음을 암시하게 해 준다.
권력이란 그 힘이 올바로 쓰여지도록 제어하지 않으면 극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위험한 야누스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폐쇄적인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한 추악한 사건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넓고 개방된 현대사회에서도 사실상 자행되고 있음을 이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인간을 그렇게 야비하게 예속시키는 무섭고 뻔뻔한 권력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라는 물신주의에 의한 것임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리라.
영화의 한 부분의 해설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쇠사슬 덕에 모든 게 훨씬 수월해졌다.
이제 성희롱은 비밀도 아니었다.
그건 섹스라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암소와 하는 수음행위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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