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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가 2012년 10월 세인트 조지스 파크를 개장했을 때, £100M를 들인 훈련장은 잉글랜드 축구의 자존심으로 인식되었다. 캠브리지 공작과 공작부인이 개장식에 있었고 로이 호지슨이 이끌던 잉글랜드 대표팀이 그 곳에서 훈련했으며 여러 명의 축구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그들 중에는 몇 주전 토트넘의 새로운 훈련장을 엔필드에 개장한 토트넘 회장 다니엘 레비가 있었다.
한 참석자는 레비에게 다가갔고 왜 런던에서 여기까지 왔는지 물어봤다. 레비는 "나는 그저 여기 와서 내 훈련장이 이보다 좋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게 다야!"라고 농담했다.
그게 전형적인 레비였다 :: 전세계 최고의 시설이 토트넘에 있어야 한다는 야망과, 언제나 대중들이 접하지 않는 천연덕스러운 유머와 함께 그가 클럽에서 이뤄낸 일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것 말이다.
다니엘 레비는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강력한 남자이면서 은밀한 남자다. 이제 거의 20년 동안 토트넘을 운영하고 있는 레비는 구단을 중위권 팀 중 하나에서 자급자족하는 현대 시대의 클럽이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의 예시로 바꿔놓았다. 레비가 보드진에 합류했을 때 구단 가치는 £80M였다. 월드클래스의 훈련장과 경기장을 갖춘 지금, 토트넘의 구단 가치는 £2bn이다. 2005년부터 3년간 토트넘의 디렉터를 맡았던 다미안 코몰리는 경기장 밖에 레비의 동상을 만들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토트넘 팬들 사이에서 레비가 전반적으로 인기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하에서 위대한 모습에 근접했고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결승진출을 이뤘지만 레비가 있는 동안 토트넘은 리그컵 1개만을 따냈을 뿐이다. 빌 니콜슨 이후 토트넘 최고 감독은 지난해 경질되었고 새롭게 지어진 경기장 근처에서 'ENIC OUT :: PROFIT OVER GLORY'라고 팬들이 외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몇몇 팬들은 최근의 발전이 레비 '덕분에'가 아니라 레비'에도 불구하고'라 주장한다. 확실히, 그가 할 일은 더 있다.
본지는 레비와 혹은 레비 밑에서 일했거나 그와 협상한 몇몇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가 어떻게 구단을 운영했는지, 무엇을 이뤘는지, 어디서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다니엘 레비가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뛰어난 사업가이자 거래자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소매는 그의 유전이었다. 레비는 동런던에 뿌리를 둔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1912년 'A Levy & Sons'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가족사업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의류할인점 중 하나인 Mr Byrite가 되었다.
자신의 큰삼촌을 따라 화이트 하트 레인을 갔다온 후 토트넘 팬이 된 레비는 학교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인 후 캠브리지 시섹스 대학에서 경제학과 토지 경제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 초 레비가 학생일 당시, 그는 학교에서 특출나게 열심히 공부했으며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았다. 본지가 레비의 대학 시절 동료들을 만났을 때, 그들 중 아무도 레비에 대해 어느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레비가 토트넘에서 보낸 20년 동안 그를 두드러지게 한 자질 - 열심히 일하고, 야망을 갖추며, 세부사항에 관심을 가지고 궁극적으로는 성공을 거두는 것들은 모두 어린 시절 레비에게 있던 것들이다. 레비는 기말 시험을 위해 특출나게 공부했고 놀랍게도 최우수 등급 학위를 받았다.
레비는 최근 Varsity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캠브리지에서 제가 집중했던 유일한 것은 괜찮은 학위를 얻는 것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것을 제가 괜찮은 직업을 얻을 수단이라 생각했거든요. 저는 거기에 제 모든 에너지를 집중했습니다. 지난 몇 달간 그들에 도달하기 위해 매 시간동안 노력했고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합니다."라고 말했다. 레비가 학위 분류로 학생들을 나열한 게시판에 자신의 이름을 찾으려 나섰다가 최우수 학위 중 1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놀란 나머지 바닥에 주저앉은 것을 기억한다.
캠브리지 이후 레비는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는 가족 사업을 위해 일했고 부동산 투자자 케이트 모스 밑에서 부동산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레비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어린 레비를 제자로 받은 통화 거래자이자 억만장자 투자자인 조 루이스와의 관계였다.
레비는 1990년대 중반 30대의 나이였지만 유럽축구에 재정 호황이 들어올 거라 예측할 만큼 똑똑했다. 그래서 ENIC는 레비를 전무이사로 두고 유럽의 클럽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시티 풋볼 그룹이 전세계의 클럽들을 구매하기 훨씬 전에 ENIC는 그들만의 국제적인 축구 프랜차이즈를 건설해가고 있었다. 소프트웨어와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관심(그들은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스토어를 소유하고 있었다.)뿐만 아니라 ENIC는 슬라비아 프라하(체코), 비첸차(이태리)를 구매했고 FC바젤, 레인저스, AEK 아테네의 주식을 구매했었다. 하지만 크라운 주얼은 언제나 잉글랜드의 축구팀에 투자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8년 그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투자하는 데 관심있어했고 그 후에는 심지어 웸블리 스타디움을 구매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잉글랜드 축구에 진출할 길을 열어준 팀은 레비가 자라면서 응원해온 토트넘이었다. 앨런 슈가 경은 토트넘 회장직에 질려하기 시작했고 1998년 처음으로 레비에게 자신의 지분을 매매하기 위해 접근했으나 2000년 12월이 되서야 딜이 마무리되었다. ENIC는 구단 지분의 29.9%를 £22M에 매입했다. 38세의 레비는 그렇게 토트넘 보드진에 합류했다.
그 당시에도 레비는 내성적이고 매스컴의 관심을 수줍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처럼 그때도 레비는 가까운 친구들로 구성된 작은 고리가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크게 사교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이 조용한 어린 남자가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축구클럽 중 하나를 운영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은 큰 도약이었다. 그리고 이는 여러 토트넘 팬들이 아직도 물어보게 만드는 이 질문을 남기게 했다 :: 다니엘 레비는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토트넘의 부회장직을 역임했던 데이비드 뷰클러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레비가 자신에게 새로운 기술들을 요구하는 역할로 성장한 것을 기억한다. "1vs1 레벨에서의 다니엘은 환상적이다. 그때의 레비는 아마 지금 군중들에게 말하는 것만큼 편안해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홍보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그것을 하지 않는다. 그는 조용하고 겸손하지만 책임을 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과소평가해봐라."
거리를 두고 사람을 분석하는 것은 어렵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레비에 대해 하는 말은 '근면'하고 '내성적'이다. 그는 자신과 사업을 하며 자신이 토트넘을 운영하는 데에 도움을 준 가까운 친구들과 믿을 만한 조언자들을 믿지만 그 네트워크 밖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와 친해지기 어렵다.
그 의구심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몇몇은 그가 카리스마가 부족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타고난 매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1000명 앞에 있는 것보다 단순히 작은 집단에서 더 잘 관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신이 레비의 인맥에 들어간다면 레비의 천연덕스러운 유머로 당신은 재밌어질 수 있다. 권력자 지위에도 불구하고 레비는 인터뷰도 거의 허락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홍보하지도 않는다. 한 소스는 "전혀 트럼프 캐릭터가 아니다."라 말한다.
레비는 스키타는 것을 즐기며 몽블랑 근처에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는 휴일때 이 곳으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를 초대한 적이 있다. 그는 흡연을 싫어하며 그가 토트넘을 인수했을 때는 심지어 클럽 샵에서 재떨이를 파는 것조차 막아서 토트넘은 잉글랜드에서 처음으로 경기장에서 흡연을 금지한 구단이 됐다. 그의 몸상태는 좋으며 이 일을 위해서는 그럴 필요가 있다. 한 동료는 레비가 20년 동안 클럽을 운영하고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하려면 '황소의 체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세부사항은 레비에게 아주 중요하다. 그는 언제나 클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 고백하는 그는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면 서류를 읽고 밤늦게까지 문서를 보낼 것이다. 한 소스는 "레비는 절대적으로 토론에 적합하다. 당신이 그와 대화를 하는데 모든 사실을 다 알지 못한다면 레비는 당신을 찾아낼 것이다."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상호작용에 관해서라면 모두가 저마다의 해석을 가지고 있다. 클럽과 가까운 인맥을 가진 한 팬은 본지에 최근의 감독들이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에 비교하면 레비는 그에게 유달리 따뜻한 편은 아니었기에 "놀랐다"고 말한다. 그는 레비를 '사회적으로 서투르다'고 묘사한다.
하지만 다른 팬들은 레비와 좋은 관게를 맺고 있다. 레비는 매년 3번씩 토트넘 홋스퍼 서포터즈 연합(이하 THST) 고위층을 만나고 있으며 THST 고위층들은 레비의 평판이 암시하는 것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따뜻하고 개방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THST 이사장 피터 하인은 레비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하인은 "그가 내 얼굴을 봤지만 확실히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곧장 건너와 내게 손을 내밀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시작부터 좋은 개인적 접촉이라 느꼈다. 내가 예상했던 것은 아니고 그에게는 약간 냉정한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개방적이고 친근하며, 진정으로 얼마나 토트넘 가족의 정신을 지지하는지 알고 나서 놀랐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레비를 어떻게 생각하든 - 서투르다거나 차갑거나, 겸손하거나 내성적이거나 - 간에 토트넘이 이기기를 레비가 얼마나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경기장에서 팀의 성공을 살아 숨쉬고 있다.토트넘이 2017년 1월 첼시를 홈에서 제압하자 레비가 밤늦게 포체티노에게 잠 못자겠다고 문자를 보낸 것은 그의 흥분을 보여준다.
08-09 시즌에는 그 반대 이유로 잠을 잘 수 없었는데, 이 시즌은 토트넘이 너무 형편없게 시즌을 시작해서 결국 무너질 것 같았던 시즌이었다. 해리 래드냅이 후안데 라모스를 대체했을 당시 토트넘은 리그 8경기에서 2점만을 얻었다. 레비는 친구들에게 팀의 운명에 대해 자신이 책임감을 느끼고 클럽을 너무나 신경쓴 나머지 몇 주간 강등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토트넘 회장을 종종 상대해야 하는 한 소스는 본지에 "다니엘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2월에서 6월 사이, 그리고 9월에서 12월 사이의 레비는 대단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적시장에서의 레비는 다른 사람이다."고 말한다.
이적 협상에 관해서 축구계에는 레비같은 사람이 없다. 20년 동안 토트넘의 모든 영입과 방출을 통제한 것뿐만 아니라 그의 악명높은 어려운 협상 때문이다. 이는 토트넘이 몇 년간 뛰어난 계약을 맺게 했으면 상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정도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했다.
축구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레비와 협상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초반의 낮은 오퍼에서 벼랑 끝 전술,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재협상까지. 업계의 어떤 사람들은 너무 많이 좌절해서 이제는 그와 거래하기 꺼려한다.
많은 업계쪽 소스로부터 종종 듣는 불평은 레비가 '이만하면 됐다."를 모른다는 점이다. 전직 선수는 "그는 아주 착하다. 비즈니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말이다. 내가 5만 파운드를 원할 때 그는 4만 파운드를 부르고 협상이 계속되다가 결국 그냥 질려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한 에이전트는 토트넘 회장이 다 쓸어가기로 결정했기에 거래에서 빵가루조차도 남지 않을 거라고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표적 예시는 2002년 페르난도 모리엔테스를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영입하려 할 때였다. 레비와 당시 레알 마드리드 스포츠 디렉터 호르헤 발다노는 선수의 이적료로 €10M에 합의했다. 하지만 레비가 뒤돌아서 토트넘이 이적료를 10년간 분할납부하려 하자 발다노는 분노해서 전화기를 내려놓았고 딜은 깨졌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완전히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가레스 베일의 에이전트 조나단 바넷은 최근 레비가 언제나 '정직하고 직접적'이기에 그를 상대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피터 바니는 2007년 찰튼 애슬래틱의 CEO였고 어느 날 아침 일찍 전화를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레비는 데런 벤트를 원한다고 말했지만 선수에 대한 모든 의심거리를 나열했고 그가 최고의 클럽으로 스텝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첫 비드는 고작 £4M였지만 웨스트햄 오너 에거트 마그누손도 벤트를 원했고 그들이 £18M를 제시하자 레비도 하루 사이에 £16.3M로 비드금액을 올렸다. 바니는 레비가 운영하는 방식을 존중한다.
바니는 본지에 "사람들이 레비에 대해 뭐라 말하는지 알아요. 그는 어려운 협상가입니다. 그가 약간 갑작스러울 수 있기에 이런 평판을 얻지만 저는 어려운 협상가라 불리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게 어려워요. 최소 금액을 내도록 하는 게 그의 일이잖아요."
하지만 레비와 함께 앉아 무언가를 협상하는 일에 관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포감이 존재한다. 심지어 레비가 끊임없이 앞뒤로 뒤집는 것을 개의치 않아한다는 가설도 있다. 한 에이전트는 "그는 협상에서 논쟁하는 것을 즐긴다. 맹세하건데, 만약 내가 그가 오퍼하는 것보다 낮은 급료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논쟁하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한 사람은 냉철한 협상을 통해 레비가 너무나도 사무적이라 그의 몸 속에는 피가 흐르지 않을거라 농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왜 토트넘은 라이벌 클럽보다 매번 거래할 때마다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가? 간단한 사실 - 그리고 레비 시대의 가장 중요한 하나의 세부사항 - 은 토트넘이 프리미어리그 라이벌과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들에게 백지수표를 건넨 적이 없다. 첼시, 맨체스터 시티와는 달리 토트넘은 그들의 억만장자 구단주로부터 현금 지원을 받지 않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리버풀과 달리 토트넘은 아직 수익을 낼 만한 거대한 글로벌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 클럽은 벌어들인 돈만 쓸 수 있고 실수할 여유가 거의 없다.
때때로 레비의 벼랑 끝 전술은 특히 그가 모든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상황에서 구단에게 놀라운 효과를 가져왔다. 레비의 가장 뛰어난 업적들 중 일부는 이적시장 끝자락에 있는데,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이미 그들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 타협했을 것이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예로 들어보자. 2008년 여름, 레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토트넘의 베스트 플레이어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자신의 마음 속에 가격표를 책정했고 그 이하의 가격은 어느 것이든 받아들이지 않았다. 맨체스터 시티가 인수되고 이적시장 막바지에 베르바토프를 영입하려 시도했을 때, 그는 협상에서 또다른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이 딜과 가까웠던 한 소스는 "레비가 계속해서 버티고 있었다."고 말한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심장 마비에 걸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네."라는 말을 들은 채 거래는 자정이 되기 5분 전에 끝났고 토트넘은 £30.75M를 이적료로 챙겼다.
현재 업계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더십 팀이 다니엘 레비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나이티드는 캐릭과 베르바토프를 토트넘으로부터 영입했지만 그 후 12년 동안 토트넘 선수를 영입하지 못했고 심지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보통은 영입하고 싶어하는 브리티시 탤런트들을 토트넘이 많이 보유했음에도 말이다. 좋은 위치에 있는 소식통은 "다니엘은 유나이티드를 잘게 썰어먹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5년 후 토트넘은 가레스 베일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흥분되게 하는 선수를 가지고 있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최신 갈락티코의 일원으로 베일을 원했다. 협상은 여름 내내 계속되었지만 또다시 레비는 자신이 힘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고 대담하게 했다. 베일은 토트넘과의 계약이 3년 남아있었고 또다시 벼랑 끝 전술은 통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적시장 막판 베일의 이적료로 월드 레코드 금액인 £85M를 지출했다.
그리고 2017년 맨체스터 시티가 카일 워커를 원했을 때 레비는 계약기간이 4년 남은 선수의 이적료로 £50M를 마음 속에 생각해두고 있었다. 시티는 그렇게 높은 금액을 내고 싶지 않았지만 프리시즌 투어를 위해 미국으로 떠날 두 팀의 시계가 줄어들자 시티가 타협했고 워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비수로서 하늘색 유니폼을 입었다.
반대로 레비는 2010년 여름 라파엘 반 더 바르트를 레알 마드리드애서 £8M로 영입함으로써 이적시장 마지막 날 최고의 거래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이 딜은 레비가 추진(래드냅은 이 딜이 가치있을 거라 확신하지 않았다.)했고 훌륭한 효과를 냈다.
하지만 힘의 균형이 다를 때 레비의 협상 전략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가설이 있다. 그가 모든 카드를 쥐고 있을 때는 최후의 시도로 하는 거래가 그의 각본이나 방식의 일부가 되었다. 한 친구는 "그가 영향력이 있을 때면 아무도 협상할 때 그보다 뛰어나지 않다. 하지만 다른 클럽들이 그가 뭘 시도할지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레비가 모든 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라면?"이라 말한다.
한 소스는 "다니엘은 벼랑 끝 전술을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더 강한 카드를 가지고 있을 때는 벼랑 끝 전술을 쓸 수 있지만 당신의 카드가 정말로 얼마나 강한지는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포체티노 말년에 필요했던 거래가 타협적이지 못한 태도로 결렬되었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포체티노가 2016년 윌프레드 자하 영입을 원했을 때 레비는 오프닝 비드는 £12M였고 레비가 그저 화를 돋우려 한다는 인상을 줬다. 그리고 선수 판매에 관해서 말하자면, 토트넘이 베일, 베르바토프, 워커를 가지고 그저 가격만 제시했을 때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2018-2019 시즌을 앞두고 스쿼드에 생기를 되찾게 한 것에 실패(토트넘은 아스톤 빌라가 인수되기 전 잭 그릴리쉬 딜에 참여했다.)한 것은 복잡했지만 자신들의 선수들을 위한 돈을 끌어오지 못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 선수단이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회춘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포체티노 시대 초반 당시 레비는 선수들의 계약을 가지고 눈에 띄게 빡빡한 구조를 운영했다. 레비는 선수들을 그의 통제 하에 계속 있게 하고, 토트넘의 급료 구조 하에서 그들을 지키며 상당히 미묘한 급료 상승을 위해 종종 재협상을 제안했다. (한때 포체티노 시대의 한 선수는 재계약의 첫 오퍼 금액을 너무 낮게 제안받아서 개인적으로 모욕받는다고 느꼈다.)
지난 몇 년의 이야기들 중 하나는 레비가 그 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토비 알더웨이럴트가 재계약을 두고 질질 끌었을 때 에릭 다이어, 대니 로즈, 크리스티안 에릭센 그리고 얀 베르통언은 '아니요.'라고 말하고 계약이 만료되게 내비둠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더웨이럴트는 판매되지 못했고 계약이 6개월 남았을 때 스스로 큰 재계약을 따냈다. 다이어가 이번 달 초 재계약을 했을 때 남아있던 계약기간은 1년이었다. 로즈는 2017년 55M의 이적료로 첼시 이적에 가까웠으나 이제 로즈는 그 일부의 금액으로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것으로 보인다. 베르통언은 이제 이적료 없이 팀을 떠날 예정이다.
에릭센은 큰 돈을 벌기 위해 팀을 떠났어야 했지만 구매자는 없었다. 에릭센이 계약에 마지막 해에 들어섬-레비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써 토트넘은 사실상 상황에 대한 통제를 잃었다. 그들은 에릭센의 이적료로 고작 £17M만을 받았다.
영입 면에서, 토트넘은 2019년부터 다시 돈을 쓰기 시작했으며 지오바니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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