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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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17 19:44 조회수 : 440 추천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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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었다면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었을까”
개봉 7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면서 이런 의문을 가져본다.
개봉 7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면서 이런 의문을 가져본다.
5·18민주화운동, 사전은 5·18민주화운동 배경에 대해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등장한 군사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사망과 함께 붕괴된다.
이를 틈타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집권이 가시화되었다.
민중운동 및 반(反)군부 세력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신군부의 집권으로 인해 더욱 후퇴하고 억압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시작하였다”고 정의한다.
즉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해 시작한 학생을 비롯한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은 폭도(영화에 의하면)들의 쿠데타로 규명돼 그토록 잔인한 탄압을 받은 것이다.
짓밟히다 못해 찢기고, 맞다 못해 터지던 다수가 무자비한 폭력보다 고통스러워 한 것은 왜곡이다.
영화에서는 석가탄신일을 하루 앞둔 순천 시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광주 시민들의 고통에 이어 놓음으로써 당시 국가 지도부의 민낯을 드러낸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시민이라고 달랐을까.
지난해 겨울까지만 해도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제작자를 고심케 했을 것이다.
어쩌면 타의에 의해 좌절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또 어땠을까.
표현의 자유는커녕, 민주주의를 외치는 목소리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2010년대에도 여전했다.
이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비밀문서로 존재했다.
다수의 국민들이 모른 채 그들만의 영토 안에서 끊임없이 탄압을 받아왔던 ‘리스트’들은 정권이 바뀌고서야 제 목소리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이름 모를 예술인은 “나 같은 사람도 블랙리스트로 수차례 언급됐다”며 허탈감을 드러냈다.
이것이 그 날의 광주와 다를 바 무엇일까.
평범한 소시민이 주인공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택시운전사’의 시대와 다를 바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나가야 할 민주주의의 길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18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의 한 가운데로 들어간 작품이다.
그 동안 5.18을 조명한 영화가 없지 않았으되 이처럼 광장 한 가운데에 용감하게 들어선 작품을 보지 못했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가 무엇도 대신할 수 없었던 소시민, 그 평범한 ‘한 사람’을 그리되 그가 보이지 않는 영웅이 될 수밖에 없도록 등 떠민 것은 역사다.
그 역사의 현장은 매년 기념식으로 끔찍했던 당시를 불러온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날 행사를 치르는 광주시청 앞 광장에 서 본 사람이라면, 그 장소가 주는 유난한 한(恨)을 몸소 느낄 수 있게 된다.
한(恨)은 바람을 타고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떠다닌다. 그리하여 2017년 8월 ‘택시운전사’는 이토록 뜨겁다.
평일 낮 시간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는 연령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삼삼오오 손잡고 모여온, 족히 60대는 되어 보이는 주부들이 있는가 하면 딴딴한 체격에 다부져 보이는 70대 남성들도 적지 않다.
평일 낮 시간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는 연령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삼삼오오 손잡고 모여온, 족히 60대는 되어 보이는 주부들이 있는가 하면 딴딴한 체격에 다부져 보이는 70대 남성들도 적지 않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중장년층을 끌어들이는 힘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송강호라는 배우의 걸출한 연기력을 품평하기 위함도 아니다. 오롯이 그 시대가, 역사가 전해준 한(恨)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이 영화를 “날조”로 치부한다.
물론 영화가 전체를 아우르며 ‘팩트체크’하지는 않았다. ‘팩트체크’의 역할은 뉴스가 하면 그만이다.
이를 두고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날조’라고 반박했다.
지난 7일 “영화 ‘택시운전사’가 날조한 부분이 있다면 법적 대응하겠다”고 맞선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1980년대를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한 마디가 아닐 수 없다. 날조.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진희 기자]
‘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네 영감과 네 상상력을 가라앉히지말라; 규범의 노예가 되지 말라.
공을 차지 않으면 골인은 100%로 불가능하다. 새로운 의견은 항상 그 의견이 보편적이 아니라는 것 외에는 아무 다른 이유도 없이 의심을 받거나 반대를 당하기 마련이다.
‘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현명하게 행동했을 때 그것을 행운이라 부른다.
‘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상실은 잠깐 괴롭게 하겠지만, 부정직한 이익은 평생 회한으로 남을 것이다.‘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가 대학에 입학하자 그의 부모는 마지막 적금을 털어서 입학금을 마련 하였습니다.
‘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당신보다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할수 있는 그런 친구이고 싶습니다.
‘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새끼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 홀로 남은 아빠 가시고기는 돌 틈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버려요.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누구나 사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최고인 똑순이 누나, 나의 누이야!
‘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사나이는 밝게 타오르는 커다란 불꽃처럼 살며 혼신을 다해 활활 불살라야 합니다.
모든 것을 용서 받은 젊음은 스스로 아무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당신의 약점들을 직면하고 인정하라. 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지배하게 하지 말라. 그것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참을성, 상냥함, 통찰력을 가르치도록 하라. 남자는 엄격히 대하면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 가능한 가축과도 같다.
아이를 버릇 없이 키우는 어머니는 뱀을 키우는 것이다.
‘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보다 못한 지도자는 부하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이고, 맨 아래는 부하들로부터 경멸당하는 지도자이다.
‘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들은 자신들이 컨트롤 하지 못하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걷기, 그것은 건강이다. 의학은 단호하다.
당장 자기도 먹을게 없으면서 자기보다 더 불행한 이를 돕는 친구의 마음..
‘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당신과 내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의 집 울타리 안에 있을 것이다.
‘택시운전사’의 시대로 역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인생이 진지하다는 증거는 털끝만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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